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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 과 죽음, 과연 행복은?


청원이라는 영화는 단순히 안락사가 어떠냐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다. 그 보다 더한 무거움을 가지고 있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으면서도 자신은 삶의 희망을 얻지 못한 이튼. 과연 그의 모습은 어떨까? 너무나도 아이러니 하다.

왕년에 잘나가던 마술사였는데 마술쇼 사고로 마술사로써의 위치도 이미 사라졌고, 전신이 마비되어 누군가가 수발을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 그의 처지. 그는 과연 살아 있는 것이 행복인걸까? 그러면서도 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힘내라며 위로 하는 것일까?


현실에서도 좌절적인 상황의 사람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내라고 그래도 살아있으니 행복할 날이 올거라 그렇게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지독히도 괴로운 희망고문일 뿐일때가 있다. 이튼또한 지독한 전신마비로 살아있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살아 있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죽어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죽음=슬픔 이렇게 보통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 행복이고 죽음은 슬픔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세뇌를 하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청원을 보노라면 그 공식이 깨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죽어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것을..

그래서 삶과 죽음중 누군가를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2. 사랑해서 보내준다.


  

 가장 쉽게 눈의 띄는 점이다. 바로 이튼의 간호사인 소피아의 사랑이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그녀이지만 누구보다도 이튼을 사랑하는 소피아. 전신마비에 걸리고

무일푼이라서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일 이겠는가.

꼭 용과 마법사가 나와야만 비현실 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완전 비현실은 아니지만 보다 비현실적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주변 여자애가 이튼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하겠다하면 말리지 않을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싶다.

정말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현실을 초월했음을 느껴 더욱 가슴아프고 절절하게 와닿았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를 그렇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락사를 지지 한다.(물론 처음엔 반대했다.)

보통은 사랑하기 때문에 잡을 것이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를 위해 그를 놓아준다. 

물론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을 위하자면 그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를 볼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를 놓아주는 소피아를 보며 그에 대한 사랑이 정말 상상을 초월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3. 고통스러웠던 영화.



청원이란 영화를 보면 정말 가슴이 안 아플 수 없다. 일단 소재자체도 안락사라는 무거운 소재이기도 했거니와 죽음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그동안 갖고왔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뭔가 멘붕을 겪게 되었다. 그 행복이라는 것이, 살아있어 행복이라는 것이 정녕 그 본인을 위한게 아니라 그 본인을 지켜보는 우리를 위한 이기적인 행복이라는 것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또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정말 그 환자 본인이 죽을 듯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죽음을 원한다면 안락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가 울고 있었으나 정작 본인인 이튼은 웃고 있던 장면을 보고, 그리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자면.. 그게 더 좋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우리가 괴롭다고, 우리가 지목하는 그또한 우리와 같을거라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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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코도우너 2013. 10. 16. 00:12